첫발을 내디딘 순간, 예전과 달라진 공기
비행기 문이 열리자마자 얼굴을 스치는 열기가 예상보다 훨씬 무거웠다. 팬데믹 이후 재개방을 거치며 보라카이는 ‘깨끗해졌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2025년 여름의 첫인상은 의외로 활기보다 ‘붐빔’이었다. 칼리보 공항 수속장은 한국·중국·동남아 승객이 뒤섞여 장사진을 이뤘고, 셔틀버스 매표소 앞에는 “직항 늘었는데 왜 이렇게 줄이 길지?” 하며 불평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섬으로 들어가는 뱃길은 여전히 바람이 시원하지만, 화이트비치에 발을 디디자마자 느껴지는 변화가 있었다. 예전에는 해변을 따라 여유롭게 퍼져 있던 바가 새로 지은 카페 & 펍으로 빠르게 대체돼 있었고, 거리마다 스마트폰 삼각대를 든 라이브 방송족이 자리 잡아 ‘휴양지’보다는 ‘콘텐츠 놀이터’에 가까운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해질 무렵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은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해변을 걸으며 “그래, 그래도 이 맛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건 변하지 않는 보라카이의 힘이었달까.
현지에서 체감한 물가·숙소·사람들
가장 먼저 체감한 가격 상승은 물 한 병에서 시작됐다. 2023년엔 30페소면 살 수 있던 500㎖ 생수가 올해는 50페소를 넘어섰다. 스테이션 1 해산물 레스토랑의 랍스터 세트는 1인 4,500페소로, 현지 친구가 “이제 로컬도 특별한 날에만 먹는 가격”이라며 고개를 저을 정도. 숙소도 마찬가지다. 화이트비치와 도보 3분 거리의 3성급 호텔은 성수기 1박 18만 원 선, 5분 더 걸어 들어가는 신축 게스트하우스가 1박 9만 원. “그래도 다른 동남아 휴양지보단 싸다”라는 위로가 통하긴 하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엔화 특가 항공권 소식까지 들으면 가성비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반면 서비스 품질은 한층 좋아졌다. 체크인 때부터 방습기·비치타월·모기향을 챙겨주고, ‘조식 대신 브런치 쿠폰’ 같은 탄력 옵션도 눈에 띈다. 현지인들은 한국어 “안녕하세요” – “맛있어요?” 정도는 대부분 구사했고, 단골 식당 직원은 네이버페이 QR을 보여주며 “KRW 페이 오케이”라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여행 전 알아두면 편한 준비와 작은 팁
첫째, 여권 유효기간을 6개월 이상 남겨야 한다는 규정은 여전히 철저하다. 필리핀 이민국 직원이 날인 전에 두 번 확인하는 모습을 직접 봤다. 둘째, 공항에서 페소 환율이 나쁘다고 망설이다가 섬에 들어오면 더 손해다. 시내 환전소는 8 시 이후 문을 닫아 첫날 야시장 투어를 계획했다면 난감해질 수 있다. 셋째, ‘선셋 세일링’은 현장 흥정이 묘미라는 말도 있지만, 요즘은 온라인 사전예약이 더 싸고 안전하다. 넷째, 해변 바는 밤 10 시 이후 갑자기 테이블 차지가 붙는 곳이 많으니 메뉴판 하단 ‘service fee’ 항목을 확인하자. 다섯째, 도보 이동만 생각했다가 땀에 지쳐버리기 쉽다. 구글맵에서 보기엔 400 m지만, 뜨거운 모래사장 위 400 m는 다른 거리다. 반팔 셔츠보다 얇은 린넨 셔츠, 발등을 덮는 샌들, 휴대용 선풍기는 필수였다. 마지막으로, 여행자 보험은 선택 아닌 필수다. 이번에도 친구가 해양 액티비티 중 발목 염좌로 현지 병원에 들렀는데 카드청구액이 30만 원을 넘었다. 보험사 모바일 앱으로 간단히 청구해 100% 보전받은 걸 보고 ‘안전장치 값’이라고 생각했다.
이 글은 2025년 6월, 4박 5일간 직접 체류하며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정보는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출발 전 공식 관광청·항공사 공지를 한 번 더 확인하시길 권합니다.